보아 오빠의 뼈 때리는 한마디 "의사들은 왜 그렇게 싸늘한지"
홍헌표 치유칼럼 '癌전癌후'
보아의 오빠 권순욱(40)씨가 말기암 투병 중이라고 본인 sns를 통해 밝혔다. 전이에 의한 복막암 4기. 그가 공개한 의료 기록에는 '기대여명 3~6개월 정도로 보이나 복막암이 회복되지 않으면 수일 내 사망 가능한 상태'라고 돼 있다. 항암제 투여로 종양이 줄어들 가능성이 40%고 약효가 있으면 평균 4~6개월의 생명 연장 효과가 있다고 쓰여 있다.
이런 뉴스가 나올 때마다 나같은 암경험자들은 움찔 한다. 이미 완치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대상이 '암'이다. 암 정보를 다루고, 암 경험자를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기사로 쓰는 일을 하는 나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암 덕분에 삶의 질이 훨씬 좋아졌지만, 견디기 쉽지 않은 심신 고통을 겪어내야 하는 암경험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동병상련의 입장에서 가슴이 저릿저릿해진다.
지난 주 그가 쓴 글이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권순욱씨는 "당장 이대로 죽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는데 의사들은 왜 그렇게 싸늘하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썼다. 그리고 의사들이 어떤 말을 했는지 옮겨 놓았다.
"이 병이 나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이 병은 낫는 병이 아녜요..."
"항암 시작하고 좋아진 적 있어요? 그냥 안 좋아지는 증상을 늦추는 것뿐입니다."
"최근 항암약을 바꾸셨는데 이제 이 약마저 내성이 생기면 슬슬 마음에 준비를 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주변 정리부터 슬슬하세요"
의사들의 말을 그대로 쓴 것인지, 아니면 권순욱씨가 들은 말을 자신의 느낌을 실어 적은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만약 의사들이 저렇게 표현했다면 환자나 환자 가족 누구라도 권순욱씨와 똑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싸늘하다, 차갑다, 냉정하다!'
한 언론사의 관련 기사에는 2000건이 넘는 댓글이 달렸는데, 암 경험자와 그 가족, 의사, 일반 독자의 입장이 각양각색이었다. 의사들의 공감 부족, 냉정함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가장 많았지만, 희망고문 하는 것보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려주는 게 맞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개인적인 경험과 지식, 관점에 따라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으니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평가하기 쉽지 않다.
내 의견을 밝힌다면 나는 권순욱씨 편이다. 기대수명의 절반도 채 살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은 40대 초반의 암 환자. 그는 지금 얼마나 무서울까. 어떻게든 살 방법을 찾고 있는 그의 절박함의 크기를 누가 가늠할 수 있을까. 2008년 대장암 3기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으며 나 역시 죽음, 남겨진 가족의 모습 등을 상상하며 불면의 밤을 보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일은 환자 본인의 몫이어야 한다. 설사 가족이라도 그런 말을 들으면 환자는 서운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생긴다. 하물며 온기 없는 병원에서 무심한 표정의 의사에게 그 말을 듣는다면 그 심정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의사 입장에서도 할 말이 많다. '용기를 준다고, 격려한다고 좋은 말을 했다가 나중에 원망 듣고 심지어는 법적 문제에 휘말릴 수 있는데 어쩌란 말이냐'는 댓글이 모든 것을 대변한다. 호스피스, 완화 의료 전담 의사도 아니고 심리상담을 병행하는 의사도 아닌데, 의사가 그러지 않았다고 잘못을 질책할 수는 없다. 부질없는 희망 고문보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려서 다가올 상황에 준비하도록 하는 게 환자에게 더 낫다는 의사 옹호론도 많다.
문제는 의사 개개인이 아니라 우리 의료 시스템, 그리고 의료인 교육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환자를 배려하는 소통 공감 능력이 조금만 있었더라면, 말투와 표정에 따뜻함이 조금이라도 느껴졌다면 권순욱씨의 서운함이 조금은 덜하지 않았을까.
기사에 달린 어느 의사의 댓글을 읽으며 마음이 좀 푸근해졌다. 그의 글은 권순욱씨 입장을 헤아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의사들의 현실적인 어려움도 알려주며 양해를 구했다. 훈계하거나 비난하거나 자기 변명을 하지 않았다.
"저는 50대 초반의 의사입니다. 속상하시고 너무도 힘드실 것 같습니다. 같은 의미의 말이라도 좀 더 기운을 낼 수 있게 말씀 못드려서 죄송합니다. 변명을 한다면, 극한의 상황에서는 의사들은 알고 있는 사실, 의사로서의 본인과 경험과 아는 만큼만 얘기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럴 땐 무덤덤하게 말할 수 밖에 없더군요. 미안합니다. 기운내서 하루하루 살아갑시다. 아직 저는 검진을 안 받아서 제 몸 상태가 어떤지 모르겠으나 누구에게나 예상할 수 없는 남은 삶이 있는 법. 그것이 하루든. 30년이든. 기운내시길 빕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딱 요만큼만 얘기해줬어도 권순욱씨의 좌절감은 덜 했을 것이다. 엄연한 현실이 바뀌지는 않을지라도. 그리고 그 다음에 다가올 일은 환자 본인의 몫이다. 권순욱씨에게 기적이 일어나기를 가슴 졸이며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