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때문에 상처받았다"는 비난이 억울한 분들께
장정희의 '마음치유 일기'
"오늘 저를 이곳에 서게 해준 사람은 제 아들입니다. 빨리 일하라는 두 아들의 잔소리가 저를 이곳에 서게 했지요."
일흔이 넘은 윤여정씨가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한 말입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고 그의 과거와 현재가 모두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평가, 찬사 일색입니다. 상은, 특히 국제적인 상은 수상자의 확실한 브랜드가 된다는 것이 또 한 번 증명된 듯합니다.
어떤 상을 받든 수상 소감에는 인종과 성별, 나이를 막론하고 늘 뒤에서 말없이 다양한 형태로 도와준 사람들의 노고에 감사하고 그들에게 공을 돌리는 인사가 빠짐 없이 등장합니다. 윤여정 씨의 수상 소감에도 몇 사람이 등장합니다. 잔소리로 끊임없이 어머니를 도전을 하게 해 준 아들, 처음 영화계로 발을 들여놓게 해 준 영화 ‘화녀’의 김기영 감독 등.
윤여정씨처럼 세계적인 상을 받지는 못하지만, 누구나 현재의 그가 있게 해준 사람들의 수고나 지원이 있었다는 것, 혼자서는 절대로 지금의 모습을 가질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기 어렵습니다.
제 심리상담실에서는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비록 현재의 자기 모습이 마음에 쏙 들지 않더라도 누군가 말없이 도와주고 애써준 사람이 있었겠지만, 상담을 받는 내담 고객들에게는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상처만 수면 위로 떠 올라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줬다고 주장하는 그 누군가가 참 고마운 존재이기도 한 경우가 많은데도 말입니다.
사실 그게 어쩌면 당연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항상 충격적이고 부정적 경험이 모든 긍정적인 경험을 덮어 버리거든요. 그렇게 많은 사랑을 줬는데도 그건 싹 잊혀지고, 한 두 번 화냈던 일이나 폭언, 폭력이 전부가 되어 사랑과 희생의 기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오직 상처만 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것으로 기억되는 사람은 그 사실에 미안해 하지만, 사실 자신이 줬던 사랑이 잊혀진 것에 대해 섭섭함으로 또 상처를 받습니다. 심리상담을 하는 입장에서 참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왜 그럴까요? 심리적 상처보다 사랑을 훨씬 더 많이 받았는데 상처받은 것만 남는 이유는 뭘까요? 상처를 받은 사람은 이성적으로 균형잡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손톱 밑에 가시가 하나만 박혀 있어도 온 신경이 거기에 쏠리는 것처럼 그 상처가 아무리 작아도 치유되지 않은 상태라면 온 마음이 그 상처에만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당신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말한다면 ‘내가 얼마나 사랑을 주었는데…’라는 섭섭한 마음은 잠시 내려 놓아야 할 것 같아요. 일단 손톱 밑의 가시를 빼 주어야 상대를 바라볼 여유가 생기니까요. 우선 아픔부터 먼저 치유해주는 게 어떨까요.
"그랬구나~."
"아직도 그렇게 아프다 하는 걸 보니 정말 많이 아팠구나."
"네가 나 때문에 아팠다니 정말 미안하다."
진심을 담은 말이 그에게 빨간 약이 되어줄 겁니다. "생각해보니 고마운 것도 있어요"라는 말을 그가 할 때까지 인내로써 용서를 빌고 다시는 그런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신뢰를 그에게 줘야 하니까요. 언젠가는 "오늘의 나의 행복과 성공은 당신 때문입니다"라며 환하게 그가 웃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