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와 인문학 28] 앱 들고 뛴 마라톤... 인간은 어디로 뛰고 있는가?
'면역력 해결사' 달리기 (58) 2021 동아마라톤(비대면 대회) 참가기
2021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은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5월 1일부터 9일까지 각자 알아서 뛰는 경기니까, 현재 진행되고 있다고 말해야 맞겠다. 기자는 십수년 동안 매년 이 대회를 뛰었고, 지난해 취소되는 바람에 2년만에 뛰었다. 앱을 켜고 뛴다. 도로를 통제하지 않는 상태에서 42.195km를 뛰는 것은 간단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몇차례에 걸쳐 나눠 뛰고 42.195km를 채우면 된다.
각종 달리기 앱들이 나와 있다. 오래전부터 전문적으로 달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어온 나이키앱부터, 삼성헬스처럼 종합적 건강관리 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아무 앱이나 하나 다운받아 진행시키고 달리면 대회 공식기록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리고 여러사람의 기록을 비교하는 앱을 다운받아 거기에 기록을 올리면 다른 사람들의 기록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순위까지 파악할 수 있다. 대회 주최측에 내 기록을 통지하는 효과도 있고.
미래형= 인간과 기계의 결합, 신생인류?
현대의 철학자로, 미래의 계시자로 필명을 떨치고 있는 유발 하라리는 현생인류의 종말을 예언하고 있다. 그것은 인류의 멸종이라기보다는 인류의 업그레이드에 가까운 변형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미래경찰들을 떠올려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사이보그 비슷한 무엇. 인간의 몸이 AI로 발전한 각종 첨단문명과 결합하게 된다는 것이다. 과학의 힘을 빌려 기능을 사용한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결합한다는 것. 그렇게 되면, 지금 순수하게 자연의 힘으로 살아가는 현생 인류는 약하기 짝이 없는 종족이 되는 것이다. 신생인류는 힘이 강할 뿐 아니라, AI의 깨달음으로 인해 똑똑하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네안데르탈인을 무찌르고 주류가 된 호모 사피엔스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어렵다는 뜻이 된다. 우리는 신생인류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조금 두려워지는 대목이다.
불가능하다고? 유발 하라리는 길에서 뛰는 사람들을 한번 보라고 한다. 귀에는 이어폰, 팔뚝엔 전화와 무슨 측정기. 어느 정도는 이미 몸에 삽입된 기계와 한몸이 되어버렸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형= 앱 들고 혼자 달리기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마라톤을 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선택이다. 처음에는 가볍게 느끼고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하지만, 10km쯤 넘어가면 천근만근, 손이 떨어질 것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앱을 작동시키려 손에 핸드폰을 들고 뛴다는 것은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비대면 마라톤은 앱으로 스스로 측정해야 한다. 기록은 무시하고 자기실천, 자기만족으로 끝낸다면 앱을 안쓰면 그만이지만 오랜만에 뛰는 대회라 뭐라도 남기고 싶으니 앱을 사용할 수밖에. 팔뚝에 붙이고 뛰어도 좋고, 시계형태로 손목에 차고 뛸 수 있는 제품도 있으니, 핸드폰을 들고 뛴 기자의 행태가 무식한 것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앱을 가동하면서 혼자서 뛴다는 것은 좀 외로운 일이다. 가장 고독한 운동이고 투쟁과 의지의 산물인 마라톤이라지만 가끔 한번씩 함께 뛰는 대회에 나가는 것은 큰 자극이 되는데, 코로나19 시대에 우리는 혼자서 뛰는 마라톤을 발명해낸 것이다. 그래도 돌파하고 나아가자는 뜻이겠지만, 어쩌면 돌아올 수 없는 선을 한발 넘어본 것은 아닌가, 궁금해진다.
과거형= 함께 뛰어야 멀리 간다
인간 본연의 운동. 가장 본질적인 운동. 이렇게 이름 지어지는 운동은 인류의 몸, 신체구조와 진화적 기능을 가장 충실하게 적용하고 종합적으로 이용하는 운동이다. 즉, 가장 인간적인 운동이고, 그 대표격이 달리기다.
그런데 장거리달리기는 인류의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고, 그 방법은 함께 뛰는 것이었다. 사냥을 위해 함께 뛰고, 나눠먹기 위해 함께 뛰었다. 그러다 더 잘 뛰는 사람을 존중하게 되었고, 더 잘 뛰기 위해 또 함께 뛰었다. 지금도 그렇다. 혼자서 뛰는 훈련을 하지만, 가끔 함께 뛰면 기운이 살아나고, 기분이 좋아진다. 경쟁 속에서 더 발전하는 나를 발견하고 그 성장의 느낌을 즐기게 된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싫어하지만, 우리 몸은 여전히 원시인이다. 아직은 그 원시적 기능을 활용해야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다. 수백만년 vs 백여년. 한참 뒤 미래에는 다를지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의 몸으로는 과거의 운동이 필요하다. 함께 어우러져 북돋으면서 뽐내면서 좀 더 빨리 좀 더 멀리 뛰는 것이 필요하다.
앱을 들고 뛰는 동아마라톤을 완주하면서, 인류의 과거/현재/미래를 생각했다. 역시 달리기는 선(善 또는 禪)이다. 나는 주선(走禪)이라고 말하길 좋아한다. 마라톤은 주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