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와 인문학 24] 올림픽, 올림피안, 그리고 '불의 전차'
'면역력 해결사' 달리기 (54) 올림픽과 달리기
올해 7월23일 개막할 예정인 '2020 도쿄 올림픽'은 개최될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인해 사상 최초로 1년 연기됐는데, IOC와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7월 개최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본 여론을 포함해 개최 취소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여곡절을 겪고 있지만 '인류의 제전' 올림픽은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 올림피안에게는 인생을 건 도전이며 영광이다. 정치적 정서 때문에 폄훼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올림픽, 그 자체에 담겨있다.
올림픽, 신의 땅에서 열린 생존스포츠
올림픽 종목은 다양하다. 국내에서는 주로 단체경기에 높은 관심을 표명하지만, 사실 대단히 개인적인 경기들이 많고, 세계인의 관심은 육상 종목들에 쏠린다.
특별히 올림픽의 꽃이라고 불리는 종목은 마라톤. 올림픽의 마지막 경기로 열리는 것이 남자 마라톤이고 우승자는 월계관을 머리에 쓴다. 신의 영역으로 올라가는 용사임을 상징하는 장면. 올림픽, 올림푸스는 신의 땅이다.
4년에 한번 열리는 올림픽은 고대 올림피아 경기에서 유래했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대표선수들이 모여 벌인 경기. 격투기와 전차, 달리기 등이 종목이다. 기원전 776년 처음 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가 패권을 잡고는 서서히 쇠퇴했고, 19세기에 부활했다.
근대올림픽은 프랑스 쿠베르탱 남작의 기여로 시작됐다.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한 게 체계적 체육훈련을 받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한 그는 올림픽의 부활을 꿈꿨다. 마침내 1896년 제1회 올림픽이 열린다. 아테네 올림픽. 정식종목은 9개. 육상, 사이클, 펜싱, 체조, 사격, 수영, 테니스, 역도, 레슬링. 조정은 날씨 탓에 취소됐다. 종목에서 보듯, 아주 기본적이고 원시적인 종목들이 올림픽의 뼈대다. 전쟁과 사냥. 생존의 기본원칙이 바로 스포츠임을 보여준다.
올림피안, 참가만으로 충분히 영광스럽다
올림피안은 원래 올림푸스의 신들을 일컫는다. 불멸의 존재들. 그리스 로마에서 숭배되었고, 서양문화의 근원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하늘의 주신인 제우스, 지혜와 전략전술의 여신 아테나, 제우스의 부인이며 결혼의 신인 헤라, 죽음의 신 플루토, 태양과 지혜의 신 아폴로, 전쟁의 신 아레스 등등.
현대에서는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가 올림피안이다. 흔히 '참가가 영광'이라는 말을 하지만, 올림픽은 말 그대로 참가가 영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식적으로는 메달을 따야 알아주고 병역면제 등의 특혜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참가만으로도 영광이고,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인생을 건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엄청나게 존경스러운 올림피안을 갖고 있다. 손기정 선수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일장기를 가슴에 붙이고 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표정'의 금메달리스트. 한민족 첫 금메달을 히틀러가 내려다 보고 있는 베를린에서 일본이 지배하고 있는 나라의 손기정 선생이 목에 걸었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올림픽과 달리기 영화의 고전 '불의 전차'
1924년 파리 올림픽에 참가한 두명의 영국 선수가 있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독실한 기독교인 에릭 리델, 고리대금업자의 아들로 유태인인 해럴드 아브라함. 100m 달리기에서 최고의 실력을 보이고 있는 그들의 우승, 영국의 영광은 예정된 것이나 마찬가지.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유대인이라는 장애, 스코틀랜드 출신이라는 한계를 이기고 꿈의 무대에 섰는데, 대회가 일요일에 열린다는 사실을 뒤늦게 에릭 리델이 알게 된다. 갈등. 신의 날에 인간의 행사를 벌여서는 안된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에릭은 고민에 빠진다. 평생을 건 도전과 평생의 사명감이 맞섰다. 어찌해야 하나. 마침내 대회를 포기하는 에릭.
그러는 와중에 다른 기회가 열린다. 종목을 바꿔 달리면 일요일이 아닌 날 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동료의 양보로 마침내 에릭 리델은 400m 우승자가 되고, 해럴드 아브라함은 100m에서 우승한다.
인종차별과 편견에 맞서 달린 해럴드와 신의 은총을 드러내기 위해 달린 에릭. 그들은 나란히 영광의 자리에 서고, 그 순간의 빛은 반젤리스의 찬란한 음악 '불의 전차'로 폭발한다. 웅장하면서도 강렬하게 심장 박동처럼 파고드는 비트가 느리게 압박해오는 신시사이저의 음파. 구약성서 속 신의 전차,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목격하는 듯한 감동에 빠지게 한다.
올림픽에서 달리는 것은 신의 영광에 동참하는 숭고한 행위인 것이다.
반젤리스 '불의 전차'. 설령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더라도 이 음악을 들으면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