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도 준비가 필요합니다"
홍헌표의 '암전암후'
그제 아침 한 조간 신문의 기사 제목이 눈에 크게 들어왔다. 기사 제목은 이랬다.
'입시와 결혼처럼 죽음에도 준비가 필요합니다'
수많은 암환우를 만나면서 든 생각을 정리해 <어떤 죽음이 삶에 말했다(흐름출판)>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집을 낸 김범석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교수의 이야기다.
그는 암을 치료하는 의사로 환우를 만났다. 어쩌면 환우들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에게 매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표현대로 "80%는 암세포가 다른 장기로 전이돼 완치가 불가능한 4기 암 환자"는 그에게도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죽음이 다가온 말기 암 환우를 안타깝게지켜보면서 그는 '준비된 죽음'을 떠올렸을 것이다.
나는 말기암 환자는 아니었다. 3기 대장암이었다. 암 기수가 1기든 2기든 3기든 관계없이 암환우는 모두 죽음을 떠올린다. 그것도 치료받으며 고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다 맞이하는 죽음을 떠올린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그 굴레에서 빠져나왔다. 밑바닥까지 내려가 삶과 죽음의 의미를 곱씹고 또 곱씹으면서 '지금 이 순간' 잘 사는 것이 죽음을 잘 맞이하는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난 10여년간 강의, 상담을 하며 수많은 환우를 만났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죽음이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던졌다. 무거운 이야기인 줄 알면서도, 대다수 환우들이 피하고 싶어하는 줄 알면서도 "죽음을 준비하자"고 했고 웰다잉을 얘기했다.
사실은, 죽자는 얘기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을 잘 살자는 얘기였다. 내게 주어진 오늘을 축복처럼 받아들이자는 얘기였다. 김범석 교수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그게 아닐까.
그 기사 나던 날, 나는 숙부님 부고를 받았다. 집에서 갑자기 쓰러지셨는데, 심근경색이 사인이라 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삶을 되돌아볼 시간조차 없이 가족과 친지, 지인들과 추억을 나눌 기회 조차 없이 세상을 뜨셨다.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꼭 2년 전, 아버지 돌아가실 때도 그랬다. 폐결핵 치료를 위해 입원수속을 밟던중 갑자기 심장 이상으로 의식을 잃으셨다. 고향 가는 길에 꼭 거쳐가야 하는 강릉-삼척 간 고속도로.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나눈 몇마디 대화가, 격리된 병원 응급실에서 입원전 나눈 몇마디 대화가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 나는 시골 어머니께 매일 아침 전화를 드린다. 실컷 수다를 떨며 하하하 웃는 시간이 내겐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