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라는 긴 터널...저도 여러분도 위로가 필요합니다
장정희의 '마음치유 일기'
코로나19 확진자가 계속 1000명이 넘고 있네요. 지난 10개월 여동안 나름대로 참고 노력하며 지내오던 국민 모두에게는 절망적인 소식입니다. 어릴 적 외갓집에 가던 길의 ‘깜깜한 절망’이 플래시백 됩니다.
추석 전날이어서 밤이면 쌀쌀했던 때, 얇은 깔깔이 원피스 하나를 입고 선물을 잔뜩 이고 든 엄마의 남은 한 손을 잡고 밤길을 걸었지요. 춥고 배고프고 무서운 그 밤길에서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 뿐 "엄마 어디까지 왔어~?"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역시 해 줄 수 있는 것은 단 한 마디. "응~. 이제 조금만 가면 돼 열 발자국만~!"
"추워 죽겠다."
"배고파 죽겠다."
"무서워 죽겠다."
말 하는 대신 "엄마 어디까지 왔어~"라고 묻기를 반 울음 섞인 목소리로 수백 번... ‘이제 조금 가면 우리 외할머니가 나를 안아 주신다. 그 화롯가에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할머니의 손길을 느끼며 잠들 거다.’ 그 기대 하나만으로 걷고 또 걷고 묻고 또 묻고...
그런데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 멀리서 어느 집 굴뚝에 피어 오르는 연기와 아스라한 불빛이 보였습니다. 순간, 저는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전속력으로 달려갔습니다. 엄마가 다급히 소리쳤습니다. "아냐 거기 아냐!" 그 순간 두 다리에 힘이 풀리고 털썩 주저앉아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오늘이 그렇습니다. 우리 코로나19 시대, 어디까지 온 걸까요?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말했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라고요. 절망은 두 다리 뿐 아니라 삶의 열정에서 힘을 빼 버립니다. 그런데 털썩 주저앉은 우리에게는 그래도 서로에게 내밀 손은 남아있네요.
"나 너무 힘들어, 너도 힘들지~? 나도 너와 같은 마음이야. 나도 너와 같은 절망이야~."
손을 잡아주고 어떻게 하면 이 깊은 절망에 빠지지 않고 일어설 수 있는지 머리를 맞대는 것만으로도, 그래도 한 번은 더 참아낼 힘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길고 긴 절망 앞에 심리상담사인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저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깊은 우울감에 빠집니다. 요즘은 더 그래요. 이 세상 누구라도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요.
위로해 주셔요 저를.
저는 당신을 위로합니다.
어느 때보다 위로가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