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와 인문학 18] 아, 차갑게 빛나는 겨울달리기의 매력

'면역력 해결사' 달리기 (48) 책 속의 겨울달리기

2020-11-13     최윤호 기자

겨울 느낌이 완연하다. 주로에서 느끼는 싸늘함이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겨울달리기. 그 맛은 달려본 사람만 안다. "추운데 어찌 달리겠나?"라고 생각하면 못 달린다. 그렇지만, 한번 길에 나가 달려보면 금세 알게 된다. 겨울달리기의 맛을.

눈덮인 길을 달리는 경험은 신비하고도 즐겁다. 겨울달리기가 주는 의외의 선물이다./ Unsplash

#1 하얀눈이 한 시간째 내리고 있다. 길에는 벌써 눈이 소복이 쌓여있다..... 동네 뒤쪽으로 난 좁다란 이면도로를 달려 내려간다. 이때가 아무런 방해 없이 조용히 달릴 수 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 한점 불지 않고, 눈은 하늘에서 수직 낙하한다. 커다란 오각형의 결정체가 어찌나 살포시 내려앉는지 나는 중간쯤 떨어지는 한 놈을 점찍어놓았다가 잽싸게 달려가 혀를 내밀어 맛본다. 눈 사탕. 나는 여태 이렇게 순수하고 내 몸과 마음을 맑게 해주는 것을 맛본 적이 없다. (엠비 버풋 지음 '달리기가 가르쳐 준 15가지 삶의 즐거움' 중에서)

겨울달리기는 우아하고 낭만적이다. 눈이라도 내릴라치면 더욱 그렇다. 얼굴에 와닿는 차가운 눈송이가 정신이 번쩍 들게 하면서 동시에 환상 속으로 인도한다. 사실 겨울달리기의 최고봉은 역시 눈 오는 날의 달리기다. 눈이 오면 포근하기 때문에 달릴 때 겁날 것이 없다. 방수 바람막이 하나만 있다면, 무적이다. 

미끄러울까봐 걱정돼 새로 쌓인 눈을 골라 디디며 뛰어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아주 차가운 날만 아니라면 그리 걱정할 것이 못된다. 그저 속도를 조금 늦춰 여유롭게 달리면 된다. 뭐, 달리다 힘들면 쉬어가도 좋다. 겨울달리기의 특권이다. 눈 한주먹 뭉쳐보기도 하고, 눈덮인 세상을 한순간 감상하기도 해보자. 겨울달리기는 그래도 좋을만큼, 특별한 경험이다. 

#2 아메리카의 모든 토착 원주민들은 달리기를 즐겼다. 1월에 개최되는 '블레더 축제' 기간 동안 가장 추운 지역에 사는 누니바크족 에스키모들은 죽은 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빙판과 눈 위에서 단거리 달리기 시합을 했다. 그들은 먼저 노를 저었고 그런 다음 곧바로 달렸다. 이것은 진신을 단련시키는 운동이 되었다. (토르 고타스 지음 '러닝, 한편의 세계사' 중에서)

겨울달리기는 또한 극도의 수련이다. 투명하고 차가운 날 달려보면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린다. 손끝 발끝은 얼어붙고, 콧물은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숨을 쉴 때 몸 속으로 파고든 찬공기가 허파를 때리는 것 같다. 

머리에서는 땀이 흘러내린다. 모자나 후드를 뒤집어 쓰고 있으니 달아오른 열기가 머리로 몰려 땀으로 흐른다. 뒷목에 차갑게 흘러지나가는 땀. 살짝 두려워진다. 뒷목이 얼어붙어 혈관에 문제가 생길까봐. 피부가 아파온다. 조금더 겁난다. 이거 동상 걸리거나 몸 상하는 거 아냐? 그래도 이길 수 있다는, 도전해 보고 싶다는 오기가 발동한다. 좋게 말하면 의지력이다. 

그렇다, 의지력, 인간의 한계 실험, 그것이 겨울달리기의 맛이다. 

겨울달리기는 가장 나다운 나, 인간다운 인간을 체험하게 해준다. / Unsplash

#3 최고의 삶이란 잊을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하는 삶이라는 뜻이다. 겨울의 달리기는 정말 대단하다. 그건 달리기가 아니라 고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힘들기만 했다면, 겨울까지 우린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거기에는 어려운 일 못지않게 즐거운 일도 많았다. 그 사실은 이 겨울이, 얼얼할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증명한다. 바람이 매서우면 매서울수록 우리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겨울다운 겨울에 우리는 우리다운 우리가 된다. (김연수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 중에서)

우리가 살면서 극기의 체험을 하는 날들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살아있다"고 목청껏 외칠 수 있는 날들이 얼마나 될까. 그런 느낌을 가져보고 싶다면 겨울달리기를 해보자. 여지껏 해보지 못했던 체험을 하게 된다.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큰 일 날 것 같은 두려움을 억지로 누르면서 달리고 또 달리다 보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가능성의 세상이다. 

인간이 인간다운 것은 밥 먹는 거 말고도 최선을 다해 자신을 고양시켜 보려 노력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피부가 얼얼할 정도의 차가운 바람에 맞선 달리기는 놀라운 경험이다. 겨울을 맞보는 최고의 방법이 바로 달리기다. 스키장에서 활강의 속도를 체험하는 것도 짜릿하지만, 의지력으로 한발 한발 내딛는 달리기는 환희에 가깝다. 

겨울달리기는 그렇게,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4 확실히 추운 날에는 어느 정도 추위에 대해 생각한다. 더운 날에는 어느 정도 더위에 대해 생각한다. 슬플 때는 어느 정도 슬픔에 대해 생각한다. 즐거울 때는 어느 정도 즐거움에 대해 생각한다..... 때때로, 소설의 괜찮은 아이디어가 문득 머릿속에 떠오를 때도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제대로 된 것은 거의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 산문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에서)

우리가 달리는 이유는 많지만, 달리지 않는 이유는 더 많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 말이다. 달리지 않을 이유는 한 트럭 분만큼이나 많다. 그래서, 추운 겨울 날 달린다는 것. 그건 사실 생각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뛰어보면 추위에 대해, 인생에 대해, 건강에 대해,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겨울달리기만의 선물이다. 보통의 평범한 달리기가 주는 평화로움과는 좀 거리가 있다. 

그런데..... 좀더 뛰면 결국 우리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 된다. 할 수 없게 된다. 무아지경이다. 그저 달릴 뿐. 그것이 바로 겨울달리기의 참맛이다. 겨울달리기는 그리하여 선(禪)이 된다. 

겨울달리기를 하다보면 손발이 시리고, 피부가 아파진다. 그래서 장갑과 모자는 필수. 코로나용 마스크가 겨울엔 방한장치로 아주 유용하다.

# 초보자를 위한 겨울 달리기 Tip

1. 장갑, 모자, 귀마개 = 겨울달리기의 최대 이슈는 보온이다. 특히 우리 몸 말단 부위의 보온이 중요하다. 달리고 있을 때는 찬 기운이 더욱 거세진다. 몸 전체는 뜨거워진 상태이지만, 몸의 끝부분들은 별로 그렇지 않다. 게다가 대체로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장갑은 필수이고, 모자, 귀마개, 후드 등 뒷목과 뒷머리를 가릴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하다.

2. 미끄러짐 주의 = 미끄러지면 큰일이다. 거칠게 땅에 부딪힐 수 있는데다, 몸이 추위에 굳어 있어 크게 다칠 수 있다. 그래서 발밑을 항상 주시하면서 조심해 달려야 한다. 미끄러움이 적은 운동화를 택하는 것도 잊지 말자. 눈이라도 쌓였다면, 등산 때 싣는 고무창 신발을 활용하는 것도 좋겠다. 

3. 선글라스와 로션으로 눈, 피부 보호 = 겨울에도 자외선은 강할 수 있다. 눈이 쌓인 곳이라면 반사광도 만만찮다. 그래서 의외로 눈이 자극을 많이 받게 되고, 피부도 탈 수 있다. 스키장에서 하는 것처럼 눈과 피부를 보호해 주자. 

4. 옷은 얇은 기능성으로 여러겹 입기 = 너무 많이 입으면 좋지 않다. 얇은 옷, 기능성 옷을 겹쳐 입되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금방 몸이 뜨거워지면, 옷을 하나씩 벗어가면서 뛰면 된다. 그러나, 너무 많은 옷을 들고 뛸 수는 없는 노릇. 적당히 기능성 셔츠에 따뜻한 옷 한 겹, 그리고 바람막이 정도가 적당해 보인다. 

5. 너무 추운날엔 쉬자 = 대체로 영하4도 정도를 경계선으로 본다. 그 이하에서는 야외달리기를 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한다. 더워진 몸과 노출된 부위의 차이도 너무 심해지고, 옷을 적당히 맞추기도 어렵다. 초보자라면 너무 추운날에는 뛰지 않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