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왜 유독 폐로 잘 전이될까? 미스터리 풀렸다
울산의대-연세의대 연구진 "특정 단백질 활용 항암제 개발 기대"
암은 위험하지만, 한 곳에 머물러 있을 때는 관리도 쉬운 편이고 절제 수술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되기 시작하면 훨씬 더 심각해진다. 암과 관련된 사망의 90%가 암 전이 때문이라는 통계도 있을 정도. 암이 전이되면 흔히 '말기'로 부르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런데, 인체의 많은 장기 중에서도 폐는 유독 암이 잘 전이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왜 그럴까.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의생명과학교실 김헌식· 최은영 교수팀과 연세대 의대 해부학교실 현영민 교수팀이 암이 폐로 많이 전이되는 이유를 밝혀냈다. 연구팀은 악성종양의 일종인 흑색종이 있는 실험 쥐의 폐 혈관내피세포에서 주로 발현하는 특정 단백질 DEL-1이 악성종양의 전이 및 항암면역반응에서 전이를 억제하는 중요한 핵심인자임을 규명했다고 9일 밝혔다.
연구팀은 DEL-1단백질을 인위적으로 결핍시킨 쥐의 꼬리정맥으로 흑색종을 주입했다. 그 결과, 쥐의 폐로 선천 면역 역할을 담당하는 세포인 호중구 유입을 촉진시켜 폐전이 병소에 염증반응이 나타나게 되고, 이에 따라 자연살해세포(NK세포) 항암면역반응이 사라져 악성종양 성장과 전이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
연구팀은 이를 역으로 활용해 DEL-1단백질이 결핍된 쥐 모델의 호중구 세포를 인위적으로 결핍시키거나, 외부에서 조합한 DEL-1단백질을 주입했을 경우 항암면역반응 결핍 반응이 효과적으로 회복되는 것도 밝혀냈다. DEL-1 단백질은 흑색종 원발암의 생성이나 전체적인 항암면역반응에는 관여하지 않고, 폐에만 작용해 암 전이와 관련된 국소적인 항암면역반응만을 조절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동안 암세포 주변의 염증 등 미세환경이 암 전이 형성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특히 폐 같은 경우 혈관이 풍부하고 고농도의 산소가 유지돼 전이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고 추측해왔었지만, 어떤 기전으로 폐와 같은 특정 장기에서 암 전이가 많이 진행되는지에 대한 연구는 드물었다.
김헌식 교수는 “이번 연구로 염증에 의한 악성종양 폐 전이를 억제하는 단백질을 발견한 것이 가장 큰 성과이며, 이 단백질로 인해 왜 폐가 다른 장기에 비해 전이에 취약한지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다”며 "DEL-1 단백질은 폐와 뇌의 혈관내피세포에 다량으로 발현되는 특징이 있어, 이 단백질 연구를 한 단계 발전시켜 DEL-1단백질을 기반으로 한 치료제를 개발한다면 폐뿐만 아니라 뇌 등 전이된 악성종양에 새로운 치료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선도연구센터사업, 글로벌프론티어사업에 선정돼 진행됐다. 해당 논문은 미국과학협회에서 발행하는 사이언스(Science)의 자매지인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11월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