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골수성백혈병 경험자인 박정호 기자.
만성골수성백혈병 경험자인 박정호 기자.

50대에 접어들면서 저는 새로운 취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 환우 카페의 운영자 자격으로 해외 컨퍼런스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어떤 신사의 색소폰 연주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70세라는 그 분이 백발을 흩날리며 흥겹게 연주하는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습니다.

당시 10년 차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우였던 그분은 첫 진단을 받으신 60세에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하셨습니다. 멋진 연주 뒤에 숨겨진 사연을 들으면서, 같은 질환을 경험한 저는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고 동시에 그분의 연주가 참 아름다웠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습니다. 그리고는 나도 저 분처럼 악기와 함께 멋지게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동안 악기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고심 끝에 플루트를 배워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인터넷에서 플루트를 구입하고 동네 문화센터에 등록했습니다. 하지만 플루트라는 악기는 그리 만만치 않은 악기였습니다. 입술 모양 만들기, 복식호흡 하기, 손가락 움직이기와 고교 졸업 후 30여년 만에 들여다보는 악보 보기까지.

몇 달 뒤 코로나19가 확산되는 바람에 강좌가 없어져 한동안 독학만 했지요. 그러다가 플루트를 배우시는 다른 환우의 소개로 다시 플루트를 배울 수 있게 되었고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즐거운 취미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연주는 여전히 어렵지만 한 음 한 음 불면서 한 곡씩 완성해 갈 때마다 느끼는 성취감이 매우 큽니다. 어머니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만화영화의 OST언제나 몇 번이라도라는 곡을 좋아하시는데 요즘은 제 연주도 마음에 들어 하십니다.

플루트를 배우면서 새삼 꾸준함의 힘을 느끼게 됩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비장한 경구의 의미를 되새기며 취미생활에서 작은 꾸준함으로 실감하고 있습니다. 매일의 일상과 건강관리에서도 이런 꾸준함이 발휘되면 참 좋을 텐데요. 운동도 꾸준히, 식생활과 수면습관도 꾸준히!

10년 후에 저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봅니다. 꾸준함으로 멋진 연주를 하면서 건강한 삶을 살고 있을까요? 그즈음엔 저도 누군가에게 울림을 주는 멋진 연주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정호 기자는?

2004년 만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급성기까지 진행되는 위기를 겪었지만 조혈모세포이식 등 치료 등을 거쳐 완전관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2021년까지 만성골수성백혈병 카페 '제로클럽' 운영자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숲해설가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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